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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김태균 기자
김태균 기자
입력 2015-09-17 23:18
업데이트 2015-09-18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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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은 산수를 해야죠…수포자라고 ‘사건’ 취급 말고 학습량부터 확 줄여 줍시다”

지난 15일 점심을 겸한 인터뷰 장소인 서울 중구 덕수궁 근처의 식당에 도착했을 때 안양옥(58) 회장은 누군가와 전화통화 중이었다. 제대로 반기지 못해 미안하다는 인사를 눈짓으로 건넸지만, 이왕 시작한 통화를 서둘러 끝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고위 관료로 추정되는 상대방에게 교원의 처우와 관련해 뭔가를 요청하는 듯했는데, 걸걸한 목소리와 특유의 다변(多辯)이 합해지면서 부탁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항의하거나 따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거침없기로 유명한 그의 스타일은 첫 대면부터 이렇게 확인됐다. 안 회장은 인터뷰 다음날인 16일 내년 3월로 예정된 체육단체 통합 실무작업을 총괄할 체육단체통합준비위원장에 선임됐다.

장학재단 이사장 발언 논란. 안양옥 신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장학재단 이사장 발언 논란. 안양옥 신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사진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교육계에 이런저런 이슈가 많은 것 같다. 우선 많은 학부모들이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들의 성범죄로 충격을 받았다.

-인성에 모범이 돼야 할 일부 교원의 잘못된 행위로 전체 교원의 자긍심이 추락한 사건이 일어나 나 스스로 자괴감을 느낀다. 교총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직사회 모두가 철저한 자성과 자기 개혁을 통해 교원들의 성희롱, 성추행 등 범죄 근절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것은 여자 교원들에 대한 학생들의 성추행, 성희롱이나 학생들 간 성범죄 문제도 위험수위에 다다른지 오래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공론화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교사가 역으로 성범죄를 당하는 일이 그렇게 많은가.

-지난 5년 동안 교사에 대한 학생의 성희롱이 323건에 이른다. 1주일에 1.2건꼴이다. 남학생이 여교사 치마 속을 찍거나 공공장소에 낙서로 특정 여교사를 지칭해 직접적인 성희롱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업 중에 여교사에게 저속한 표현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거나, 여교사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든지 뒤에서 껴안으려 하는 등 사건들도 많다. 쉬쉬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합하면 발생 건수가 얼마나 더 될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교육부나 교육청의 대응은 어떠한가.

-교육현장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보다는 정책적 실현에만 매몰돼 있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틈이 벌어져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것이고, 그런 공백으로 청소년 성범죄 등 일탈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고 가정의 책임도 크다.

→그건 학교가 져야 할 책임을 가정에 전가하는 것 아닌가.

-가정교육이 송두리째 깨진 상태에서 학생들이 학교에 오니 어려움이 많다. 과거 대가족 체제에서는 ‘예비 사회화’가 된 학생들이 학교에 진학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상황이 이러니 교사들이 너무 힘들다. 사회에서 교사들에게 거는 기대와 책임은 점차 높아지는데 권위는 갈수록 사라져 간다. 이런 이중고 속에서 교사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장관도, 교육감도 학교 현장으로 내려와 학교의 애환과 실상을 잘 파악해야 하는데 현장과 유리돼 정책을 홍보하는 데만 급급해 있다.

→학생들의 학력과 관련한 최대 이슈는 ‘수포자’(수학포기자) 문제다.

-교육과정 개정이 교육학자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난이도가 올라간 게 사실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10년간을 ‘국민 공통기본 교육과정’이라고 하는데, 이전에 초등학교에서는 산수로, 중학교에서는 수학으로 계열적인 난이도 수준이 정해져 있었다. 삶의 활용에는 난도가 낮은 산수 개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는 삶에서 활용할 쉬운 산수를 배우는 게 맞다. 학습량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공감한다.

→언론에서 수포자와 관련해 많은 보도가 있었고 부모들의 관심도 많다.

-수포자를 하나의 ‘사건’으로 접근하는 언론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수포자가 많아진다’고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수포자 중에서는 계기가 된다면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학생도 많다. 언론이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다시 공부할 수 있게 하느냐, 개선할 방법을 찾아 보여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나.

→수포자를 비롯해 교육과정 개편을 두고 갈등이 심한 것 같다.

-유럽에서는 각각의 교육과정을 갖고 있는데 너무 자율로 맡기다 보니 교육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결과가 발생했다. 미국도 주마다 교육과정을 별도로 갖고 있다. 연방정부 차원의 교육과정을 만들려고 했지만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통일된 교육과정을 만들지 못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국가 교육에 통일성이 있다. 이건 아주 복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논란이 참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중앙정부에서 통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너무 자주 바뀐다. 해방 이후 중앙정부는 교육과정을 7~10년마다 한 번씩 개정해 왔다. 그나마 교육의 안정성을 담보했던 시기다.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이 바뀐다. 이명박 정부 때는 3개의 교육과정이 적용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은 ‘교육실험 공화국’이 돼 버렸다.

→정부가 교육과정을 계속 바꾸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정치권에서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면 표를 얻기 쉬워진다. 정치인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현 정부는 교육과정 개정의 시작을 ‘문과·이과 통합’에서 출발했다. 세계적인 추세에 비춰 볼 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치권이 악용하는 측면이 있다 보니 학교 현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혼란이 발생한다. 예전에는 그나마 정책적 일관성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바뀐다. 그렇다 보니 현장의 교원들에게 화살이 돌아오고 있다. 교육의 소중한 가치인 항존성을 지키기 위해 교원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교육과정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국가 교육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구현하는 사람들이 바로 교사다. 현장 교사가 주축이 돼 ‘보텀업’(상향식) 방식으로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 또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현장 피로감이 큰 만큼 교과별 전면 개정은 피하고 대입(수능)제도와의 연계성도 함께 검토해 현장의 혼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교육부, 교육청, 교원단체 등 주체들이 너무 따로 노는 것 아닌가.

-교육부는 학교와 장벽을 쌓고 현장과 분리된 정책을 내놓는다. 여기에 직선 교육감제에 따라 중앙 정부와 교육감 간 교육이 분리되면서 학교가 이중고를 느끼고 있다. 교원들의 명예퇴직 증가가 국민연금법이 불안해서 그런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교원들이 학교에서 보람과 의미를 못 느끼는 내면의 좌절감이 더 큰 요인이라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교총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민’(民)의 생각을 ‘관’(官)이 수용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예전에는 직업 공무원들이 주도하는 관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건강한 사회단체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관과 ‘정’(政)이 지원하며, 언론이 이를 판정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그래서 그동안 교총 회장으로서 교육부와 정치권에 서로 토론하고 견제하면서도 새로운 ‘제3의 답’을 같이 찾자고 요구해 왔던 것이다.

→교총은 보수 단체라는 세간의 인식이 참 강하다.

-교총은 68년의 긴 역사와 최대 전문직연구교원단체로서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신축적이고 유연한 사고는 언제든 가능하다. 예컨대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해야 한다고 할 때는 보수의 성향을 드러내지만,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부와 생각이 다르다. 직선 진보교육감과도 뜻을 함께할 수 있는 게 교총이다. 실제로 여학생 체육 활성화를 위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적도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도 마찬가지다.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수능 개혁에서 전교조와 비슷한 입장을 보인 적이 있다.

→그래도 교총의 정체성을 감안할 때 진보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는 불가피하지 않겠나.

-교총의 정책 기조는 교육의 본질, 바로 그것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주장했던 ‘9시 등교제’를 반대한 이유는 이 교육감이 진보적 인사여서 그런 게 결코 아니다. 학생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는 게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반대를 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교총이 추구하는 대학입시의 바람직한 개혁 방향은 무엇인가.

-우리는 공교육 정상화와 공정한 학생 능력 평가를 위해서는 수능시험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대안으로 과거 예비고사식으로 맞느냐 틀리느냐를 따지는 방식이 아닌, 문제은행식 국가기초학력평가 도입을 요구해 왔다. 학생 평가의 변별력은 대학별 본고사가 아니라 통합사고력과 인성은 내신과 학생부로, 학생의 미래 잠재력은 전공 교수 중심의 면접으로 측정하면 대학입시에서의 공교육 매몰 현상이 충분히 해결될 수 있을 걸로 자신한다.

→현장의 교총 회원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나.

-13만명의 목소리를 모두 듣기는 어렵다. 다만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려고 하루에 5명 이상과 늘 접촉하고 있다. 교원 능력 평가와 같은 중요한 정책결정을 앞두고는 회장 이름으로 회원들에게 문자나 메일을 보내고 이를 반영하는 피드백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교사들에게 명예퇴직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교사는 교실을 지켜야 한다는 호소였다. 그런데 다소 오해가 생기면서 일부 교원들로부터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 명의 나이 든 교사가 명예퇴직하면 젊은 교사 2명을 뽑을 수 있다는 게 명퇴 활성화의 논리이지만, 그게 그렇게 되겠나. 젊은 교사 1명만 뽑고 나머지 1명은 뽑지 않거나 기간제 교사로 채울 것이다. 연륜 있고 지혜로운 교사 1명을 잃고 젊은 교사 1명을 얻는 일은 전체 교육계 입장에서는 손해다.

→교총 직원들과 회의를 많이 하는 걸로 유명하다.

-교총에서는 매일 아침 두 차례 회의가 열린다. 첫 번째는 오전 7시 40분에 시작하는 ‘740회의’다. 김종식 사무총장, 김동석 대변인과 10분 동안 주요 안건에 대해 회의를 한다. 그 다음에는 30여명의 교총 간부들이 머리를 맞대는 이른바 ‘750회의’다. 지난 5년 동안 이 두 차례의 회의를 거른 적이 거의 없다.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정책과 입장을 정한다. 특정 사안에서의 교육부에 대한 지지도, 비난도 다 이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안양옥 교총 회장은

1957년 전남 보성 출신. 서울 효제초, 동성중, 동성고를 나왔다.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다 받았다. 서초중·동작중·수도여고에서는 교사로, 서울대·단국대·동덕여대·용인대·한국체대에서는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초빙교수, 한국교원대 교환교수를 지냈고 2001년부터 서울교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 서울 교총연합회 부회장이 됐고 2010년 34대 교총 회장을 맡은 뒤 연임해 35대 회장을 하고 있다. 2010년부터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2013년부터 대한체육회 평가위원회 위원장, 2014년부터 국민생활체육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2015-09-1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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