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구본영 칼럼] 미국과 중국 사이, ‘서희 외교’가 답이다

[구본영 칼럼] 미국과 중국 사이, ‘서희 외교’가 답이다

입력 2014-11-13 00:00
업데이트 2014-11-13 01:41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요즘 서울 빛초롱 축제가 열리는 청계천은 유커(중국 관광객)로 넘쳐나고 있다. 한·중 정상이 자유무역협정(FTA)의 사실상 타결을 선언한 베이징 인민대회당 주변이 한국 관광객들로 붐볐듯이. 13억 인구의 중국이 우리에게 거대한 내수 시장의 빗장을 푼 까닭은 뭘까. 과거 혈맹이었던 북한이 추진 중인 압록강 하중도의 황금평경제특구에 중국 기업의 투자 건수는 ‘제로’라는데 말이다. 한·중 FTA 체결이야말로 비단 장수 왕서방의 실리적 상술을 말해 주는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구본영 논설고문
하긴 중국인들의 상술은 본래 유대인이 울고 갈 정도였다. 지폐와 어음도 세계 최초로 사용했다지 않는가. 아편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늘 세계 총생산의 20% 이상을 차지한 ‘공룡’이었다. 1949∼78년 사회주의 경제를 실험하느라 허비한 ‘잃어버린 30년’은 제쳐 두자. 이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중국인들의 잠들었던 상혼을 흔들어 깨우자 엄청난 경제성장 속도를 시현하지 않았나. 한·중 FTA는 어느새 주요 2개국(G2)이 된 중화(中華)의 자신감 발현으로도 비친다.

어쩌면 한국을 중립지대화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사회 일각에선 이참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미국보다는 중국을 더 가까이 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탈미 친중론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은 반만년 역사에서 언제나 친구이자 적이었다. 영어로 표현하면 프레너미(Frenemy)였다. 얼마 전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북 인권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는 내정간섭”이라고 거품을 물었다. 북한 정권의 붕괴는 바라지 않는 중국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다.

독일 통일 2년 전인 1989년 가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은 동베를린에서 유통기한이 끝난 사회주의 체제를 바꿀 개혁을 한사코 거부하는 에리히 호네커 동독 서기장에게 경고했다. “인생은 너무 늦게 오는 자를 벌준다”고. 물론 그 이전에 서독 헬무트 콜 총리는 옛 소련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제공했다. 고르비가 동독을 버렸듯이 이제 시진핑이 북 세습정권을 포기하면 남북 간 진정한 협력은 급물살을 탈 게다. 북한이 보다 합리적 정권으로 ‘레짐 체인지’되면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적다. 하루가 다르게 경제력을 불리고 있는 중국이 어디 우리의 원조에 매달릴 처지인가.

다만 중국이 G2라고는 하나 세계의 지도국이 되기엔 왠지 역부족으로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꿈꾸는 비전이 다당제와 직접선거,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확고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탓이다. 중국이 이런 세계 문명사의 큰 흐름에 올라타지 않는 한 지식산업이 근간인 21세기 유일 패권국이 되긴 어려운 노릇이다. 학문과 과학기술의 창의는 자유가 있는 곳에서 샘솟기 때문이다.

까닭에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중국과도 협력을 강화하는 ‘연미협중’(聯美協中)이 우리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지난한 일이지만 한국 외교가 개척해야 할 뉴프런티어다. 쉽진 않겠지만 지레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까닭 또한 없다. 과거 기울어져 가는 송(宋)과 중원을 장악한 요(遼·거란) 사이에서 고려의 서희가 그랬다. 그는 요의 위세에 굴복하지 않고 또 다른 신흥세력인 여진과 요·송의 틈새에서 고려의 전략적 가치를 당당히 설파함으로써 외려 강동 6주를 양보받았다.

중국으로 하여금 핵개발에 매달리는 북한이 더는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함정’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도 이를 위한 좋은 카드일 수 있다. 미국은 바라지만, 중국이 꺼리는 현실을 역발상으로 활용할 경우다. 북핵을 막지 못하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가 불가피함을 주지시킴으로써 중국의 북핵 억제 영향력 강화를 이끌 지렛대로 삼으란 얘기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적극 참여해야겠지만, 중국이 제안한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를 외면할 이유도 없다.
2014-11-13 31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