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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100세 시대에 맞는 ‘삶의 리모델링’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100세 시대에 맞는 ‘삶의 리모델링’

입력 2013-12-06 00:00
업데이트 2013-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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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뒷바라지 ‘족쇄’ 풀고 자기개발 통해 생산활동시간 늘려라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으나 베이비부머들은 아직도 고도 성장사회의 그늘에서 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에 고령사회의 이중 파고가 눈앞에 닥치고 있으나 미지근한 물속의 개구리처럼 여전히 변화에 둔감한 채 살아가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등 일부 긍정적인 변화도 보이지만 50대들은 자녀 교육은 물론 결혼, 의료, 장례 등에 많은 돈을 낭비해 노후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체가 고령사회에 맞게 삶의 패턴을 ‘아주 급격하게’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중년의 남성이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한국무역협회 주최 2013 우수수출기업 채용박람회에서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는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삶을 구조조정하고 리모델링하는 등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한 중년의 남성이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한국무역협회 주최 2013 우수수출기업 채용박람회에서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는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삶을 구조조정하고 리모델링하는 등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부모 세대는 60세 정년퇴직 후 10년의 여생을 사는 70세 인생이었지만 베이비부머는 100세 시대를 살게 될 첫 세대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30~40년의 긴 여생에 대비하기는커녕 사교육비, 자식 분가 등 자녀 뒷바라지에 미래를 저당 잡히고 있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건강, 심리, 재무, 사회적 관여 등 4개 영역으로 나눠 베이비부머의 은퇴준비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평균은 100점 만점에 62.2점으로 낙제를 조금 면한 수준이었다. 영역별로는 재무가 52.6점으로 가장 낮았으며 이를 뒷받침하듯 공적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 등 3중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갖췄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해 노후 준비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건강은 66.4점으로 비교적 높게 나타나 긍정적 신호를 보였다. 베이비부머가 노후 준비에 소홀한 것은 자녀교육과 결혼자금의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연구소의 또 다른 조사를 보면 베이비부머의 92%가 자녀 고등교육 학비를, 54%가 결혼준비비용을 거의 또는 상당 부분 제공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신혼집 비용을 제공한다는 응답자도 4분의1 가까이 됐다.

자녀 부양의 부담은 또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1년 출생에서부터 대학 졸업까지의 자녀 부양비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억 6200여만원으로 추정됐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윤수 차장은 통계자료를 활용해 미국의 자녀 부양비를 2억 4000여만원으로 추정했다. 이를 1인당 국민총생산(GNP)과 비교하면 한국의 자녀 부양비는 1인당 GNP의 9배, 미국은 5배로 우리나라가 소득 수준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을 자녀 뒷바라지에 쓰고 있었다. 여기에 결혼비용까지 더하면 베이비부머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 결혼 비용으로 5000만~1억원, 여자는 1000만~3000만원이 든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는데 미국은 평균 2900만원으로 훨씬 검소했다. 결국 결혼비용까지 포함한 자녀 부양비는 한국이 1인당 GNP의 10~12배, 미국은 6배 정도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베이비부머들은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있으나 자식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결혼비용에 대한 신혼부부의 의식을 조사한 것을 보면 부모가 결혼비용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설문에 ‘그렇다’는 응답자는 35%에 불과하고 65%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신혼부부들 가운데 결혼비용을 남들에 비해 많이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5%에 지나지 않았고 65%는 남들에 비해 적게 쓴 편이라고 답해 부모들의 결혼비용 지원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남들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이 같은 괴리 현상이 빚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강창희 미래와금융연구포럼 대표는 “선진국은 출발부터 노후 교육을 하는데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들은 고성장 시대의 생활습관, 인생관이 아직 배어 있다”면서 “일본은 이미 10여년 전에 절약하며 살아가는 법, 우아하게 늙는 법 등에 대한 책이 나왔을 정도로 고령 사회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금리 고성장의 시대에는 모아둔 목돈을 은행에 넣어 두고 살아갈 수 있었느나 저금리, 저성장의 시대에는 아껴 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면서 “집을 줄여 빚을 갚고 골프 회원권을 처분하고 나아가 혼수비용을 줄이는 등 의식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도 베이비부머의 삶을 다룬 책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에서 “베이비부머 일부가 퍼뜨린 호화 결혼식 문화는 이제 전체로 확산돼 그들을 누르고 있으니 자업자득”이라면서 “베이비부머가 경제성장에 몸 바친 결과 집값과 결혼 비용이 올랐고, 사회가 전 방위적으로 경쟁 체제에 돌입하면서 청년 세대의 사회적 진입 비용이 치솟아 그 책임이 부모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서구처럼 자식이 대학에 가면 독립하고 또 알뜰 결혼이 뿌리내려야 베이비부머들이 아파트를 처분하지 않고, 노년 빈곤 위험도 줄일 수 있고, 제3의 인생을 조금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책에 나오는 50대 전직 은행원은 “월급이 센 편이지만 은행 다닐 때에도 애들 셋 학원비로 월 200만원 넘게 들어가는 등 항상 생활에 쪼들렸다”면서 “그때 한 달에 5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저축을 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는 요즘 맞벌이 부부들은 한 달에 150만원씩 저축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베이비부머는 경쟁, 성장, 성공, 출세에 중독된 시대를 살아 왔다. 자립심과 독립심도 강하다. 직급, 계급 등 사회적 성공의 정도로 세상을 분류하는 습관이 아직 남아 있어 전무로 퇴직한 사람은 전무 퇴직자끼리, 상무 퇴직자는 상무로 그만둔 사람들하고만 만날 정도로 폐쇄적이다. 자식들에 대해서도 적어도 내 아들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며 욕심을 부려 경쟁적으로 지원을 한다. 이러한 쓸데없는 경쟁 심리, 체면 문화, 과시 욕구가 교육, 결혼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솟게 한다. 이른바 ‘관중효과’다. 한 사람이 일어서니 뒤에 있는 사람도 일어서고 결국 전체가 서서 경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전기보 행복한 은퇴연구소 소장은 “베이비부머는 경쟁하며 치열하게 사는 것에 길들여지고 그렇게 살면 미래가 보장된다고 세뇌된 세대”라면서 “인구 구조가 변하고 성장이 멈추는 초유의 시대를 맞아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소비를 줄이고 끊임없는 자기 개발을 통해 생산활동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퇴직자 교육을 나가 보면 대부분 풀이 죽어 불안해한다”면서 “이제는 60세 이후를 어떻게 살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제룡 서울은퇴자협동조합 이사장도 고령화 사회에 맞게 삶을 리모델링할 것을 강조했다. 소득으로 지출을 감당할 수 없으면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 만큼 사교육비, 아파트 등에 낀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장례문화의 개선을 주문했다. 스티브 잡스도 더 이상 암 치유가 어렵자 가정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았는데 우리는 생명 연장이 무의미한 말기암 환자에게도 투약하고 하루 80만원하는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등 낭비 요소가 많다면서 죽음의 질을 높이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수명 연장은 부양이라는 비용을 수반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이러한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11년에 펴낸 고령화사회백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연금이 노후 주요 수입원이라는 응답이 13.2%에 불과할 정도로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다. 반면 미국은 67.0%, 일본은 67.5%, 독일은 84.3%에 이른다. 1960년대 5년 안팎이던 부모 봉양기간도 지금은 20~25년에 이른다. 부모, 자식 관계에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으나 베이비부머들은 이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50대는 하루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자살률이 높다.

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은 “베이비부머는 긴 노후를 스스로 부양해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한편으론 취업 걱정 없이 황금기를 보낸 세대”라면서 “반면 청년 세대는 노동시장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해 캥거루족이 되는 불운한 세대”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 사회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냉정하게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가야 한다”면서 “과도한 대학진학률, 낭비 요소가 많은 결혼·장례 문화를 정비하는 등 미시적 개혁 외에도 정년 제도를 철폐하고 능력 있는 고령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산업화 시대에서 고령화 시대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가 이제 자식이 아닌 고령화 사회에 응답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stslim@seoul.co.kr

2013-12-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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