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상이 알아주는 명감독이었으나 지금은 볼품없는 CF광고나 찍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발 왁스만(우디 앨런). 그런 그에게 재기의 기회가 찾아온다. 로스앤젤레스의 거대 영화사에서 뉴요커의 삶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찍어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 옛 명성을 되찾고픈 욕심에 수락은 했으나, 남은 문제가 간단치 않다. 투자사 대표의 애인 엘리(테아 레오니)는 다름아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전 부인! 아내를 훔쳐간 예거(트리트 윌리엄스)를 향한 적개심은 사그라지지 않고, 엘리를 향한 미련 역시 아무래도 떨쳐지지가 않는데….
할리우드에 진 빚이 없다는 듯 스크린을 통해 거침없이 내뱉는 감독의 발언은 기대 이상으로 신선하다.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남녀의 연애담을 기술껏 꼬아놓은 코미디에서 은근슬쩍 감독은 ‘할리우드’(제작시스템 안팎의 허상 등)를 조롱하는 절묘한 엎어치기 기술을 구사했다. 신경불안 증세가 심해져 촬영 도중 갑자기 발의 눈이 멀어버리자, 엘리의 도움으로 스태프들조차 감쪽같이 속인 채 온갖 해프닝을 엮으며 영화촬영을 마무리하는 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얼렁뚱땅 6000만달러짜리 대형영화를 만드는 발의 에피소드는 그대로 할리우드를 향해 날리는 통렬한 조소의 펀치인 셈이다. 각본까지 직접 쓴 감독은 직설화법으로 비판의 어조를 높여간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 상황은 갈수록 가관이다.‘쓰레기’라는 혹평으로 만신창이가 된 영화에 프랑스 평단은 극찬을 쏟아놓으니 말이다. 맥락없이 속사포처럼 웅얼웅얼 쏟아내는 발의 대사를 꼼꼼히 뜯어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감독의 의도가 읽히는 보석같은 은유들을 낚을 수가 있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