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현대시연구회 ‘행복한 시인의 사회‘

이화현대시연구회 ‘행복한 시인의 사회‘

입력 2004-03-05 00:00
수정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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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시들이 쏟아지고 사랑받았던 때문일까.흔히 지난 80년대는 ‘시의 시대’로 평가받는다.신군부 세력의 등장과 ‘광주 항쟁’,노동해방을 향한 열기,중산층 가두 시위로 이어지는 역동 상황은 현상 너머의 시대 본질을 꿰뚫는 시인의 본능을 자극했을 것이다.물론 시인들의 ‘노래 방식’은 달랐다.변혁에 대한 직접 화법,알레고리와 상징으로 호흡 가다듬기 등 다양한 ‘시적 몸짓’이 그것이다.

이화현대시연구회가 펴낸 ‘행복한 시인의 사회’(소명출판)는 그 80년대의 시를 본격 분석한다.이화여대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저자들은 일단 3가지 주제로 나눈다.

1부 ‘해체와 실험’에서는 오규원·이성복·김혜순·황지우의 시를 들여다본다.이들은 시의 전통적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는 데 주력했다.그들은 “타락한 현실에서 더 이상 기존의 시적 규범으로는 세계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광고 언어 등을 차용하면서 새로운 형식과 방법론으로 물신 숭배현상의 산업사회를 비판”(오규원)하거나 “근대의 외상인 광주의 흔적이 새겨져 있고,그 죽음의 시간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파괴의 열정”(황지우)에 몰두한다.

이들이 형식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의 물신성과 지배 권력의 야만성을 폭로했다면, 2부 ‘민중과 서정’에 나오는 시인들의 노래는 더 적극적이다.연구자들은 고정희에게서 “부정과 불의의 현실에 침묵하는 신 대신에 새로운 신의 모습을 찾으며 현실과 대결한 치열한 시정신”(고정희)을 살피거나 노동 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에의 염원을 노래한 박노해에 주목한다.혹은 “슬픔으로 총칭되는 현실에 더 절실하게 몸을 담그고 슬픔의 뿌리를 만지는 서정성”(정호승)이나 떠낢의 정서(곽재구)를 노래한다.

3부 ‘일상과 문명’에서는 90년대와 21세기의 단초를 보인 일상시의 시인들을 살펴본다.“광주 민주화 항쟁이 가져온 내면적 고통과 죽음의식을 양산하는 사회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의 구체적 현상들에 대한 본능적 추구”를 통해 ‘자연’의 세계로 향한 정현종의 시,“굵직한/의무의/간섭의/통제의/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로 80년대를 읽고 상징과 은유의 알레고리적 수법으로 탈출을 시도한 최승호의 세계를 설명한다.

저자들이 ‘시의 황금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복고적이지 않다.주체적인 근대 지향성이 도드라진 80년대에 제기된 과제와 물음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데 인식의 뿌리가 닿아있다.김현자 교수의 문답은 이를 절실하게 보여준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후기 자본주의적 메커니즘 속에서(…)문학은 상품화 되고 상품성이 문학적 척도가 되기도 하는 상황 속에서,저 기억 속에 묻힌 80년대 문학을 불러내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문학사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재구성되어야 하고,과거란 현재로 소환되어 끝없이 현재를 변혁시켜야 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2004-03-05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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