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속 현충일”… 황규만씨의 외길정성 결실

“감격속 현충일”… 황규만씨의 외길정성 결실

송태섭 기자 기자
입력 1991-06-06 00:00
수정 1991-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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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전우이름」 40년 만에 찾았다/국립묘지 「김○○의 묘」 주인공은 “김수영씨”/서울신문 읽은 동기생이 명부 보내 실마리/“현대사의 비극” 기억하게 무명비는 그냥 두기로

40년을 찾아 헤맨 그 전우의 이름은 군번 117162의 육군소위 김수영이었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힌 5만여 순국영령들의 묘비 가운데 단 하나뿐인 무명용사비(서울신문 90년 6월25일자 11면 보도)의 주인공 이름이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상오 국립묘지 동쪽 제2묘역에서는 김 소위의 아들 종태씨(40·춘천시 후평동 주공아파트 407동 308호)와 40년 전 전우인 예비역 육군준장 황규만씨(61·범양상선 부회장) 등이 오열하고 있었다.

황씨는 지난 50년 8월 경북 포항지구 전투 때 새로 전입한 지 5분 남짓 만에 전사한 김 소위를 현장에 매장하고 후퇴한 뒤 계속 군무에 쫓기다 14년 전 이름도 모르는 김 소위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케 하고는 유족들을 찾는 데 반평생을 바쳤었다.

황씨의 이처럼 안타까운 사연이 지난해 6·25를 맞아서 서울신문에 보도되자 전국 각지에서 김 소위의 가족임을 자처하는 전화가 수없이 걸려왔었다.

그때마다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조목조목 여러 정황을 캐물어 보곤했지만 하나같이 실제인물이 아니어서 실망만 거듭됐다.

그러던 지난해 11월초 김 소위와 시흥보병학교 갑종간부 1기 동기인 나보현 예비역 대령(62)이 동기생 명부를 보내왔다.

김 소위의 이름을 찾는 일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하고 있던 황씨는 다시 한가닥 희망을 걸고 1백46명의 명부를 뒤져가며 김 소위를 찾기 시작했다.

6·25 때 포항지구에서 전사한 4명 가운데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은 50년 8월24일 전사한 것으로 돼 있는 김수영 단 한명뿐이었다.

산천이 4번이나 바뀌도록 목메게 찾던 바로 그 김 소위가 분명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전사일과 불과 3일 차이가 날 뿐 아니라 국립묘지에 알아본 결과 어디에도 김수영 소위의 묘비는 없었다.

김 소위가 틀림없다고 확신한 황씨는 곧바로 유족을 찾아 나섰다.

보훈처에 알아보니 춘천에 김 소위의 혈육인 딸 광성씨(44)와 아들 종태씨가,서울영등포에 누이들인 수덕씨(59)와 수봉씨(56)가 살고 있었다.

구청과 동사무소를 통해 이들 가족이 해방 후 함남 원산에서 월남한 사실을 확인한 황씨는 10여 일 만인 11월13일 마침내 유족들을 만났다.

김수영 소위는 해방 후 원산에서 월남,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50년 1월 갑종 1기생으로 시흥보병학교에 입학했다.

김 소위는 전쟁이 터지기 이틀 전인 6월23일 아들 종태씨가 태어나자 다음날 휴가 나와 잠깐 아들을 본 뒤 곧바로 전쟁터로 나가 그해 8월 포항 안강지구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4살되던 해 어머니가 재혼을 해 그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고모집에서 생활해온 종태씨는 해마다 현충일이면 할머니 손을 잡고 국립묘지 산마루에 서서 묘지를 찾는 사람들을 보며 서러움을 달래왔다고 했다.

김 소위의 가족들은 사흘 뒤 40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의 묘 앞에서 제사를 지냈고 또 지난달 말에는 황씨와 함께 포항 전사지에도 다녀왔다.

황씨의 40년에 걸친 전우애는 이날 두 번째로 아버지의 묘비를 찾은 종태씨가 황씨의 만류에도 불구,본사에 전해옴으로써 비로소 알려지게 됐다.

황씨와 유족들은 「김 소위의 묘」에 이름을 새겨 넣으려다 현재 그대로 이름없는 묘비로 남겨두기로 했다.

40년 동안 이름없이 세워져 있던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전쟁의 아픈 상흔을 기억하는 하나의 유물로 길이 남기기 위해서이다.

다만 묘비 아래 상석에 「김수영」이라는 이름과 유가족을 만난 날짜 등을 새겨두기로 했다.<송태섭 기자>
1991-06-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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