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작동 한 귀퉁이에 묻혀 있는 40년 전의 졸병입니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 환갑이겠군요. 어디다 누군한테 대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한마디 하고는 싶은 마음이네요. ◆조야의 모든 관심이 소련과 고르바초프라는 사람에게 쏠려 있군요. 며칠 전에 막을 내린 소련 상품 전시회에는 연1만여명 관람객이 다녀가고 계약고도 3천만달러에 이르렀다 합디다. 하기야 모스크바서울 사이의 비행기 길이 트인지도 오래 됐지요. 하지만 너무 소련 소련하고 시끌벅적한 것을 보는 우리 동네 마음은 그렇게 편한 것만은 아니네요. 더구나 오늘은 현충일이라고 하는 날 아닙니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월이 약』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가 못하군요. 2년 전 영국 텔레비전이 방영한 다큐멘터리가 있었지요. 「한반도알려지지 않은 전쟁」이라는 제목이었다고 기억되네요. 그 필름은 6·25때 소련 공군이 참전한 것을 「증명」했지요. 영국까지 들먹일 것 뭐 있나요? 지난해 가을에는 소련 국방성의 시도로프중장이 6·25 참전을 시인했잖습니까. 스탈린한테 결재 맡고 소련제 탱크 앞세워 쳐들어온 「북괴군」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그러니 점령된 서울거리에 「조선인민의 친근한 벗 쓰딸린 대원수 만세」라는 현수막도 붙었던 거지요. ◆40년 세월이 무섭긴 하네요. 하기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에 따르자면 강산도 네번은 바뀌었겠지만요. 「국익」 때문에 이렇게 바뀐다고는 합시다. 그래도 그 40년전의 더운 여름날 소련제 탱크에 소련 조종사의 기총소사에 피 흘리며 죽은 우리 동네 젊음들을 잊어도 좋다고 할 수야 없겠지요. 안그런가요? 한소수교 열기속에서 맞는 오늘 현충일이 우리 동네 젊음들에게는 야릇해지는 마음이네요. ◆너무들 들뜨지는 말기 부탁합니다. 어제의 적을 오늘에 친구로 삼는 것 별로 반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평화의 날을 위한 초석이었다 하겠으니까요. 그러나 잊지는,잊지는 맙시다.
1990-06-06 1면